AX 사례를 읽다 보면 이상한 기분이 듭니다. Klarna는 AI 상담사로 정규직 700명분의 일을 처리했다고 했습니다. Morgan Stanley는 자문역 팀의 98%가 어시스턴트를 쓴다고 발표했습니다. 대단한 숫자입니다. 그런데 다 읽고 나면 우리 회사에서 당장 할 일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당연합니다. 그 회사들은 직원이 수만 명이고, 전담 조직이 있고, 모델 계약을 따로 맺습니다. 숫자가 크다는 건 우리와 조건이 다르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국내 실무자들이 직접 올린 기록을 찾아봤습니다. AI 커뮤니티 지피터스(GPTers)에 쌓인 글들입니다. 숫자는 훨씬 작습니다. 대신 그대로 따라 할 수 있습니다.
ERP는 있는데, ERP 밖에서 한 번 더 일합니다
한 가구 제조사의 SCM 담당자가 쓴 글이 있습니다(지피터스 원문). 매일 하던 일은 이랬습니다. ERP에서 데이터를 뽑습니다. 엑셀로 옮깁니다. 눈으로 훑으며 이상한 것을 찾습니다.
말하자면 회사는 ERP를 샀는데, 정작 판단은 ERP 바깥의 엑셀 한 장에서 이뤄지고 있었던 셈입니다. 이런 구조는 한국 중견 제조사에서 흔합니다.
그는 시스템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 틈만 자동화했습니다. 엑셀 VBA와 파이썬으로 짠 스크립트가 재고 보충이 필요한 건 331건, 단종품인데 처리가 안 된 건 160건, 사양이 바뀐 건 98건을 걸러냈습니다.
시간을 얼마나 아꼈는지는 쓰여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매일 눈으로 훑어서 160건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여기서 얻은 건 속도가 아니라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 네 시간이냐, 팔백 원이냐
교육 콘텐츠를 만드는 1인 제작자의 사례는 절감률이 훨씬 큽니다(지피터스 원문). 영문 PDF를 한글 PPT와 강의 스크립트로 바꾸는 일이었습니다. 주 5~8시간 걸리던 작업이 25분으로 줄었다고 썼습니다.
95%라는 숫자보다 눈에 들어오는 건 따로 있습니다. 교재 한 권을 만드는 데 든 API 비용이 600원에서 800원이었습니다.
사람이 네 시간 하던 일과 팔백 원. 이 대비가 중소기업 의사결정자에게는 어떤 절감률보다 잘 와닿습니다. 다만 이 수치는 작성자 본인의 추정이고, 연 384시간이라는 값은 25분을 1년으로 환산한 것입니다. 측정값이 아닙니다.
한글 파일과 카카오톡을 자동화해야 한국 회사입니다
해외 사례를 그대로 가져오면 자주 막히는 지점이 있습니다. 문서와 메신저입니다.
현직 공무원이 올린 글에는 한/글(HWP) 스크립트로 행정 문서 작성을 자동화한 이야기가 나옵니다(지피터스 원문). 반복 문서 기준으로 작업 시간이 40~60% 줄었다고 했습니다(본인 추정). 글로벌 사례집에는 절대 나오지 않는 종류의 병목입니다.
카카오톡도 마찬가지입니다. 챌린지 인증을 집계하거나 실적을 공유하는 일이 단톡방에서 벌어집니다. Zapier 템플릿에는 이런 게 없습니다. 채널을 바꿀 수 없다면 집계하는 층만 따로 떼어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120명 규모 회사의 경영지원 담당자는 비개발자인데도 사내 문의 챗봇을 만들었습니다(지피터스 원문). 통신비, 경조사비, 연차, 와이파이 같은 질문이 대상이었습니다. 눈여겨볼 건 방식입니다. 완벽한 지식베이스를 먼저 만들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들어온 질문에 맞춰 응답 매크로를 하나씩 늘려 90개까지 쌓았습니다.
만드는 것보다 어려운 건 굴리는 것
가장 값진 글은 성공담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이는 단톡방에 실적 요약을 보내는 봇을 만들었다가 사고를 겪었습니다(지피터스 원문). 봇이 잠시 멈춘 사이 보낼 메시지가 큐에 쌓였고, 복구되는 순간 그것이 한꺼번에 터졌습니다. 본인은 이를 "폭탄 문자 사태"라고 적었습니다.
자동화를 검토하는 사람에게 이 기록이 앞의 성공담들보다 쓸모 있습니다. 자동화는 만들 때가 아니라 멈췄다 다시 돌 때 사고가 납니다. 재시도를 어떻게 할지, 밀린 작업을 버릴지 보낼지, 그걸 미리 정해두지 않으면 겪게 됩니다.
이 사례들을 읽을 때 주의할 것
앞의 숫자들은 기업 IR이나 보도자료가 아닙니다. 커뮤니티 회원이 자기 경험을 스스로 적은 기록입니다. 제3자가 검증하지 않았고, 절감 시간은 대부분 본인 체감입니다.
그러니 Klarna의 230만 건과 여기 25분을 같은 무게로 놓으면 안 됩니다. 성격이 다른 자료입니다.
다만 검증 강도가 낮다고 쓸모가 없는 건 아닙니다. 이 기록들의 가치는 크기가 아니라 재현 가능성에 있습니다. 엑셀 VBA, 앱스스크립트, 파이썬 스크립트. 예산 결재도, 전담 조직도 필요 없습니다. 담당자 한 명이 자기 업무에서 시작했습니다.
우리 조직이라면
큰 사례를 덮고 이렇게 물어봅시다.
- 우리도 시스템 밖에서 엑셀로 한 번 더 일하고 있는 업무가 있나요. 대개 거기가 첫 지점입니다.
- 그 업무의 목적이 속도인가요, 아니면 놓치지 않는 것인가요. 331건 사례처럼 둘은 다릅니다.
- 자동화가 멈췄다 다시 돌 때 무슨 일이 생기나요. 만들기 전에 답을 정해두는 편이 낫습니다.
전사 AI 전환을 그리기 전에, 담당자 한 사람의 엑셀 한 장부터 보는 게 순서입니다.